… 작 가 일 상/… 육아 일기

그렇게 난 철이없던 사람이였다.

월하화★ 2019. 11. 29. 03:16
반응형

어릴 적엔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IMF로 인해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셨고, 주식도 몽땅 날아가 15평 아파트로 이사해야만 했다. 그때가 초6때였을거다. 이사하기 전에 항상 문틈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에, 나는 잠을 못 이루었다. 아, 소리 지르는 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 말라고 작게 소곤거렸을 거다. 아버지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 엄마와 항상 싸우시다가 어머니가 그만해요, 동네 사람들 깨겠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팬티바람으로 밖에 나가서는 야, 니들 뭔 상관이야?! 불만 있으면 나와!라며 소리를 백-지르는 통에 경찰도 몇 번 왔을 정도로 동네 유명인사였다.

 

창피한 건 둘째 치고, 너무나 무서웠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걱정되어 방문을 살짝 열어 확인하려 들어오는 소리에 나는 자는 척해야 했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아버지는 경찰에게 몇 번 주의를 받고는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집안으로 들어오셔도 뭐가 그렇게 불만이셨는지, 물건을 던지는 소리와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나다가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잠잠 해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가 주무시나 보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감으려 했지만, 욕실에서 물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했다.

 

아, 결혼은 절대 안할거야.

돈을 많이 벌어서, 아빠한테 복수할 거야.

남자들은 다 아빠처럼 똑같을 거야. 내가 이용당할 빠에야, 내가 이용해줄 거야!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않을꺼야!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우리가 조금만 발소리를 내도, 역정을 내시며 물건을 던지기 일쑤였다. 2살 차이인 여동생과  8살 차이나는... 남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이 5살 때였나, 엄마가 일하러 밖에 나가던 날, 잠에서 깨다 말고 갑자기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다. 아빠는 택시기사라 이틀 중 하루는 쉰다. 그런 때는 보통 낮에는 주무시는데, 그날 자신이 자고 있는데 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플라스틱 옷걸이로, 남동생을 무자비하게 때리셨다. 그래서 아빠가 집에만 있으면 숨이 막히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집이 싫었다. 하루는 엄마한테 울면서 빌었다.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 하고 말했지만 돌아온 말은 너희가 나중에 커서 결혼할 때 아빠 없는 건 문제가 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결국 엄마는 아빠한테서 못 벗어나는 거잖아.

정이 많이 들어서, 결국 아빠와 이혼하면 혼자서 우리 데리고 살기가 두려우니까

그렇게 말을 포장한 거잖아! 왜 우리 기분은 전부 무시하는 거야..?

 

속으로 말을 꾹 삼켜야 했다. 말하면 엄마가 속상해하니까.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정말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곳이 도대체 어디 있을까, 하고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20살 되던 해에, 나는 결국 아버지와 말싸움을 했고, 나는 아빠가 너무 창피해, 이럴 거면 왜 우리를 낳은 거야!”라는 말에 아버지는 내 목을 조르며 “죽고 싶어? 죽여줄까?”라고 서늘하게 말했다. 엄마와 동생이 말린 후에야, 진정되었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목이 졸렸다는 충격과 슬픔이 겹쳐왔다.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일로 인해, 결심이 섰고, 모든 걸 뒤로한 채, 집을 나갔다. 엄마한테는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마.」라고 편지만 달랑 쓰고 나왔다.

 

당당히 시험에 합격 후, 간호조무사도 했었지만 돈벌이가 적다는 느낌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찾아 헤매다 결국 캐디를 하기 시작했다. 집나 와 고생이라고 다들 말했지만, 나는 집 나와서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편했다.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캐디를 하면서 내 취미인 일본어 번역을 동시에 하며 벌여들였던 수입은 그동안 입고 싶었던 옷, 갖고 싶었던 화장품 등을 사는데만, 시간낭비를 했던 철부지 아이였다. 남자 친구와도 가벼운 만남이었지만, 상대 쪽에서는 결혼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럴 때마다 피했고,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와도 같은 마음이다.

320x10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