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의 개인뉴스

[해외 소설] 내일을 찾는 여행 고향에서 쫓겨난 아이들

월하화★ 2020. 3. 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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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손을 피하다 독일에서 쿠바로 건너던 요셉, 자유를 찾아 쿠바에서 미국으로 바다를 넘으려는 이사벨, 내전에서 나라를 빼앗기 시리아에서 독일로 여행을 계속 머프 무드.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위기에 처한 동요하는 어른들 앞에, 때로는 그들을 대신하고 때로는 그들의 앞에 서서, 가족을 지키려고 한다. 본래라면 학교에 다니며 친한 친구들과 서로 장난치고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던 세대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내면의 흔들리자 손가락 끝의 감각까지도 책에서는 매우 세밀하게 그려지고 있다. 가족을 멸시했을 때 느꼈던 귀까지 뜨겁게 될 정도의 분노, 수용소의 고난이 쌓일 대로 지친 듯한 어른들의 쉰 냄새, 마음이 비어 버린 듯 무표정한 동생, 숨도 못 쉴 맹렬한 최루탄의 바람, 바다에서 감각을 잃어 가는 손발.희생자나 난민이 "숫자"로 전환되는 뉴스 속에서는 결코 충분히 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숨결이 거기에는 있었다.

시리아에서 벗어난 마흐무드의 말로 잊지 못할 말이 있다. 배의 갑판에서 기도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낯선 관광객들로부터 혐오의 시선이 향한 때였다."우리가 당연한 장소(예를 들어 알레포의 폐허와 난민 캠프의 담장 안)에 있는 한 그 사람들은 우리의 일을 잊고 있는. 하지만 난민들이 그 사람들의 선호하지 않는 것을 하면(예를 들면 국경을 넘어 저 사람들의 나라에 든다거나 그 사람들의 가게 출입구에서 자거나 그 사람들의 차 앞으로 돌진이나 그 사람들의 여객선 갑판에서 기도를 한다든가), 그때는 이미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아이들은 때때로 몸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끄고 눈에 띄지 않도록 애썼다. 마치 내 자신이 투명하게 된 듯이. 과연, 세계가 위기에 무관심할 만한 이유가 그것뿐일까?

이야기 속에서는 다른 시대에 살던 아이들의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난민의 길"은 세월을 뛰어넘고 연결된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조부모나 그보다 더 앞선 세대가 피난 생활과 무관한 사람은 없을 정도이다.

주인공들이 걸었던 길은 우리가 기대하는 "해피 엔드"만은 아니다.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도 때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누군가의 내일을 지킨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에는 있었다. 이렇게 누구나 조상이 어려운 역사를 뚫으면서도 때로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연명하고 온 것이다. 그 연결을 잊고 있을 때, 사람들은 무관심에 빠지다 정작 난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면"배척"을 부르짖을 것이다.

세계 곳 곳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고함 소리가 나온다."천장이 없는 감옥"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학살이 계속되는 수단 미국을 목표로 오로지 사람들이 걷는 중남미 국가에서, "우리를 보고""그리고 돕고"과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런"난민의 길"은 일본에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연간 1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난민 신청하면서도 인정되는률은 매우 낮다. 폭격과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와도 잠자리를 찾아 헤맸던 주인공들 같은 사람들이 지금 일본 내에 존재하는 것이다. 유니세프의 같은 큰 단체뿐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많은 단체가 소규모 이면서도 친절하게 난민들에게 요리 첨이,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끌어당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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