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럼’ 하면 관련된 단어들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세일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항구도시인데요. [세일럼]하면 딱 떠오르는 단어는 마녀와 마녀사냥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이렇게 서양에서 마녀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전설일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진짜로 마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적 상상력으로 지어낸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 이전의 미신적 전통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서양에서 마녀라면 일단 뾰족한 턱에 매부리코를 가진 마귀할멈 떠오르거나 만화에서 나오는 아기자기한 마녀도 떠오를 때가 있어요.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쟁반을 공중에 떠다니게 하고 기괴한 잔치를 벌이고 커다란 솥단지에 약재들을 보글보글 끓이며, 알 수 없는 흑마술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 마련이지요.
<나, 티투 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17세기 미국 ‘세일럼의 마녀재판’에 희생된 흑인 여성 티투 바의 삶을 역사적 사실과 상상적 전복을 통해 그려내며 현대 미국 사회의 소수자 차별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소설의 저자인 마리즈 콩데는 인터뷰를 통해 “티투 바 이야기를 쓰는 것은 현재 미국 사회의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편협함, 위선, 인종주의에 있어서 청교도주의 시대 이후로 거의 변한 점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서구 사회의 부와 권력에 의해 재편되는 세계의 현실을 <나, 티투 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를 통해 고발하고 있어요. 현대사회가 얼마나 잔혹한 사회인지 그걸 책에다 풀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듯한데도 우리 독자를 위해 가독성이 좋게 책에 풀어냈는데요. 세일럼의 마을을 마녀사냥의 광란으로 몰아가고, 또한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어 낸 마녀재판은 온 세상의 이목이 되고, 현대사회에 와서 변함없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 이 소설의 내용을 모두가 알고, 현대사회의 무지함과 씁쓸함, 아직도 있는 편협함, 위선, 인종주의 등에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도서를 많이들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출판사 서평
세일럼의 마녀 재판에서 살아남은
흑인 여성 노예의 대안 역사 서사
―상상적 전복의 글쓰기
콩데는 티투 바라는 바베이도스 출신 흑인 여성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노예로 끌려왔다가 1692년 세일럼 마을의 다른 ‘백인 마녀들’과 함께 재판을 받은 기록을 우연히 접하게 되는데, 이후 이 여성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찾지 못한다. 억울하게 마녀로 몰렸던 다른 사람들이 복권된 반면, 티투바가 아마도 흑인 여성 노예였기에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났으리라는 점에 인간적 연민과 일체감을 느낀 작가는 “티투 바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은 역사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피부와 성별 때문에 거부당한 인간적 권위를 그에게 꼭 회복해주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마녀란 뭐지? (…)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교감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진 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치료하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은 존경, 감탄, 감사를 불러일으킬 만한 최상의 재능이 아닌가? 따라서 마녀는, 그런 재능을 지닌 여인을 마녀라고 부르기를 원한다니까 그리 불러주기는 하겠지만, 두려움 대신 애정과 숭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_35쪽
작가는 ‘나, 티투 바’라는 선언하에 티투바의 탄생 이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전사(全史)를 자서전적으로 다루면서 (카리브해 앤틸리스제도의 섬 바베이도스에서 노예의 딸로 태어나 죽은 자와의 소통, 치유의 능력 등 초자연적 힘에 입문한 이후, 미국 청교도주의 목사에게 팔려 세일럼의 마녀 재판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와 노예 반란을 선동한 죄로 처형당하는) 제3세계 유색인 여성 중심의 상상적 텍스트를 내세운다. ‘세계를 재정리하는 작가’가 이제 역사에 새롭게 새긴 ‘세일럼의 검은 마녀’ 티투바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치유사-마녀, ‘사랑을 너무 좋아하는’ 욕망의 존재, 모두를 품는 드넓은 인간애의 표상, ‘반란의 꿈’을 불어넣는 투사가 된다.
콩데가 창조한 여성 서사의 주인공 티투바의 매력은 끝이 없다. 티투바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이자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이 당당하며,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놓지 못한 인물이다. _289쪽 / ‘옮긴이의 말’에서
현대 사회의 증오와 편협함, 위선과 잔인성에
대립되는 깊은 공감과 연민, 빛나는 인간애
―수평적 상상의 글쓰기
티투바 이야기를 쓰는 것은 현재 미국 사회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편협함, 위선, 인종주의에 있어서 청교도주의 시대 이후로 거의 변한 점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_마리즈 콩데
소설에는 당대 사회(콩데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환유)에 맞서 티투 바와 연대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티투 바의 어머니 아베나, 양아버지 야오와 티투 바를 초자연적 힘에 입문시킨 만 야야가 있다. 인종주의에 희생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로, 순수한 인간애와 연민 을 티투바의 마음에 심어줌으로써 함께한다. 잔혹한 청교도주의자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일종의 신념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성서와 증오’를 기반으로 한 편협하고 잔인하며 위선적인 백인 세계, 가부장적 세계를 대표하는 패리스 목사는 ‘도처에서 악을 보기 때문에 악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그에 대항해 잠시나마 우정과 연대로 맺어졌던 패리스 목사 부인은 인종차별과 계급갈등으로 인해 결국 티투바를 배신한다. 세일럼의 감옥에서 만난, 《주홍 글자》의 주인공이자 당대 사상에 반하는 반항적 인물인 ‘페미니스트’ 헤스터는 티투 바에게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지만,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헤스터는 인종을 넘어선 여성 간 연대의 시작은 바로 평등이 그 전제 조건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티투 바와 헤스터의 사이는 서로의 다름까지도 보듬어 안는 관계이다. 남자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극렬 페미니스트 헤스터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영(靈)이 되어서조차 당당하게 남자를 품는 티투 바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성의 구분을 초월한 사랑까지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_288쪽 / ‘옮긴이의 말’에서
또 다른 인종주의의 희생자, 도처에서 박해받는 유태인 벤저민 코헨 다제 베도와의 사랑과 연대의 묘사는 작가가 모든 타자들이 겪었던 역사의 영역에 대해 직관과 상상력을 동원해 탐색한 결과이다. 다제베두와 처음 만난 순간 ‘자신도 고통의 나라를 안다고, 뭐라 규정하기 힘든 방식으로 우리는 한배에 탔고 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 보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소설은 ‘문학과 문화는 민주주의와 투명성, 공감, 존중 등의 사상을 지향하고 특권이나 편견, 성차별 등을 철폐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인간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 점점 커지는 이 시기에 문학은 침묵과 억압의 문화를 멈추게 하는 더 중요한 세력이 될 것’이라는 대안 노벨문학상의 설립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마리즈 콩데가 그 최초 수상자가 된 까닭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 도 서 서 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남자는 우울하면 안 되나요 (0) | 2019.12.29 |
---|---|
[서평] 어쩌다, 검찰수사관 (0) | 2019.12.27 |
[서평]날나리 문제아가 미국 뉴욕에서 일으킨 기적 (0) | 2019.12.23 |
[서평]그레이스 켈리와 유럽 모나코 왕국 이야기 (1) | 2019.12.22 |
[서평]오늘, 당신의 말은 다정한가요? (0) | 2019.12.18 |